클레식 명곡 헨델의 ‘메시아’
1741년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1685년~1759년)은 아일랜드 총독으로부터 더블린 자 선 콘서트에 쓸 곡을 작곡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헨델은 그해 8월 22일부터 시작해 서 24일 동안 그의 가장 유명한 곡이 될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작곡하는 데 열정을 바 쳤다. 이미 런던에서 유명했지만 <메시아> 작곡을 계기로 헨델은 그 후 수세대에 걸쳐 누구나 아는 작곡가로서 명성을 굳히게 되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전 세계 합창단은성탄절을 기념할 때 이 곡을 공연한다.
오라토리오 장르는 17세기에 처음 생겼다. 오라토리오라는 이름은 16세기, 17세기 가톨릭교회에 부속으로 지어진 기도실을 가리키는 단어에서 나왔다. 원래 고해성사를 하는 시기에 극장은 문을 닫았지만 기도실에서는 오라토리오가 공연되었다. 오라토리 오는 관현악이 동반된 합창곡으로 솔로와 합창이 번갈아 연주되고, 대부분 등장인물 과 줄거리가 있는 내레이터 텍스트가 준비되어 있다. 오페라와 비슷하지만 별도의 의 상이나 연기, 무대 배경 없이 공연되었다.
대부분의 오라토리오와 달리 <메시아>의 줄거리는 선형적이지 않다. 예수에 대한 명상과 성경의 예언을 암송하는 부분이 단편적으로 나온다. 헨델이 대부분 세속 음악 을 작곡한 작곡가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메시아>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유명한 합창 '할렐루야'는 바로크 음악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곡이다. '우리는 양떼같이 헤매었다' 와 '우리를 위해 나셨다'도 유명하다. 1742년 더블린에서 <메시아>가 성공적으로 초연 된 후로 헨델의 명성은 하늘을 찔렀고, 상업적 작곡가로서 그의 이력은 더욱 공고히 다 져졌다. 헨델은 가장 유명한 오라토리오인 <메시아>를 작곡한 사람이지만 정작 <메시아>의 내용과는 매우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름이 역사에 기록 될 것임을 확신하며 런던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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